PLATO IV Terminal, ca. 1972-74. Credit: University of Illinois Archives
밝고 선명한 그래픽, 반응하는 터치스크린,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는 앱, 그리고 게임과 교육 소프트웨어.
지금 여러분이 떠올린 것은 아마도 현대의 태블릿, 아니면 아이패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1970년대 중반, PLATO라 불리던 놀라운 시스템에 관한 것입니다.
PLATO는 텔레타이프나 펀치 카드 같은 시대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혁신이었습니다. 50년도 더 전, 만약 당신이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샴페인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면, 미래의 한 조각을 마주할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오늘 당연하게 누리는 많은 기술의 씨앗이 바로 그곳에서 심어졌고, 그중 몇 가지는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우주 경쟁과 PLATO의 시작
1959년, UIUC의 전기공학도 도널드 비처는 단순히 회로를 설계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기술의 경계를 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반이 사실상 문맹이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연구소의 챌머스 셔윈 박사는 두려움 없이 질문하는 분이었죠.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컴퓨터를 교육에 활용하지 않는 거지?’”
그 질문은 단순했지만, 번뜩이는 빛처럼 강렬했습니다. 셔윈이 상상한 것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학생과 대화하며 배우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도구. 그 비전은, 냉전과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과학과 기술을 절실히 필요로 하던 시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셔윈의 아이디어는 엔지니어, 교육자, 수학자, 심리학자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그러나 초기 논의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기술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고, 기술 전문가들은 교육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연에서 태어난 혁신
모든 논의가 실패로 끝나기 직전, 알퍼트는 도널드 비처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비처는 당시 UIUC가 보유하고 있던 ILLIAC I 컴퓨터와 오래된 레이더 장비를 활용해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이 구상이 단순한 연구의 틀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아차린 알퍼트는, 미 육군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비처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단 2주 동안의 실험 끝에, PLATO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PLATO의 핵심은 단순했습니다. 학생이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며 학습하는 시스템.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교육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PLATO는 단지 사람들을 배우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과 인간의 만남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했습니다.
PLATO I terminal in 1960. Credit: The Wide World of Computer-Based Education (Bitzer, 1976)
초기의 PLATO 시스템 화면은 겉보기에는 단순히 평범한 TV 세트를 개조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가능성은 그 단순함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화면에는 자가 유지형 저장관(display tube)이라 불리는 특별한 장치가 내장되어 있었고, 여기에 해군 전술 방어 시스템(Naval Tactical Defense System)에서 사용되던 소형 키패드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화면 위에는 ILLIAC 컴퓨터가 제어하는 프로젝터를 통해 슬라이드가 투사되었으며, 학생들은 키패드를 이용해 이 슬라이드를 넘기고 조작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한 권의 책처럼 화면은 그들 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PLATO가 단순히 투사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그것은 진정한 혁신이라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시스템의 가장 놀라운 점은 ILLIAC 컴퓨터가 제공한 추가적인 기능에 있었습니다. 벡터 그래픽과 텍스트를 슬라이드 위에 겹쳐 표시할 수 있는 이 기능은, 초당 최대 45자를 출력하며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혁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비처와 브라운펠드는 이 기능을 “전자 칠판(electronic blackboard)”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전자 칠판은 단순히 글자와 이미지를 보여주는 도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학생들과 시스템 간의 실시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 창(窓)이었습니다. 화면 위에 떠오르는 텍스트와 선들은 단순한 기계적 출력이 아니라, 학생들의 생각과 반응을 읽고, 이에 대답하며, 또다시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형태의 대화였습니다.
PLATO의 이 작은 화면은 단지 텔레비전의 개조품이 아니라, 교육의 미래를 담아낸 창문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PLATO II block diagram. Credit: US Office of Naval Research's Digital Computer Newsletter, October 1961-April 1962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는 단일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배치(batch) 처리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명령어를 모아 실행한 뒤, 결과를 기다리는 방식이었지요. 컴퓨터와 인간은 서로를 마주보며 대화하기보다는, 멀리 떨어져 서로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PLATO는 그 고요한 침묵을 깨트렸습니다.
학생들이 입력한 내용을 화면에서 즉시 확인하고, 시스템이 이에 반응하는 실시간 상호작용의 경험. 그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960년, 이 혁신적인 시스템은 비로소 ‘PLATO’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곧 “Programmed Logic for Automatic Teaching Operations(자동 교육 작업을 위한 프로그래밍 논리)”라는 이름의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초기의 PLATO 시스템은 한 번에 단 한 명의 사용자만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단순한 프로토타입은 작동했고, 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 작은 출발은 단지 기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기술이 결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인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고 조용한 시작은 곧 더 큰 가능성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PLATO II terminal in 1961. Credit: A Little History of e-Learning (preprint, Cope & Kalantzis, 2021)
PLATO II: 학습의 새로운 지평
1961년에 등장한 PLATO II는 그야말로 변혁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간단한 키패드에서 벗어나 알파벳과 숫자를 모두 입력할 수 있는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전에 사용되던 특별 키들은 학습 과정에 더 큰 직관성과 능동성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특별 키들 중 몇 가지는 학생과 컴퓨터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 CONTINUE: 다음 슬라이드로 이동
• REVERSE: 이전 슬라이드로 돌아가기
• JUDGE: 입력한 답이 정답인지 확인
• HELP: 추가 자료나 정답을 제공
• 그리고 가장 독창적인 키, AHA 키: 문제의 해답이 갑자기 떠올랐을 때 그 깨달음을 즉시 기록할 수 있도록 설계된 버튼이었습니다.
특히 AHA 키는 단순한 학습 보조 도구를 넘어, 학습자의 깨달음 순간을 시스템과 공유할 수 있게 설계된 상호작용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키는 학생들이 단순히 문제를 풀어나가는 존재에서 배우고 생각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PLATO II의 가장 큰 도약: 타임 셰어링
PLATO II가 이룩한 또 다른 혁신은 타임 셰어링(time-sharing) 기술의 도입이었습니다. 이제 여러 명의 학생이 동시에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더 이상 PLATO I처럼 한 번에 한 명씩만 사용할 수 있는 제한된 시스템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한계는 존재했습니다. 당시 ILLIAC 컴퓨터의 메모리는 여전히 제한적이어서, 동시에 두 명의 사용자만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발전은 거대한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시스템을 함께 사용하며 학습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학습은 더 이상 개인의 고독한 과정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PLATO III와 새로운 가능성
1963년, ILLIAC I의 퇴역과 함께 PLATO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PLATO III의 새로운 아키텍처는 약 6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쳤으며, 이는 Control Data Corporation(CDC)의 CEO였던 윌리엄 노리스(William Norris)가 개조된 CDC 1604 컴퓨터를 기증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노리스는 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고, PLATO 프로젝트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증된 CDC 1604-C는 208 kHz 클럭 속도와 32,768개의 48비트 워드를 저장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각 워드는 두 개의 24비트 명령어를 인코딩할 수 있었으며, 이 성능 덕분에 PLATO는 더 정교하고 대규모 학급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학습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TUTOR 언어: 교육을 위한 도구
PLATO III의 또 다른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 소프트웨어, TUTOR 언어의 탄생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그래픽 터미널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1967년, 컴퓨터 기반 교육 연구소(CERL)에서 개발된 TUTOR는 이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비처는 TUTOR의 목표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수업 자료를 만드는 교사가 컴퓨터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전 PLATO 시스템에서 사용되던 FORTRAN은 복잡하여 교사들이 다루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PLATO의 설계자 폴 텐차르(Paul Tenczar)는 이를 단순화하고자, 그래픽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교육 시스템에 적합한 “쉽고 직관적인 언어”를 개발했습니다.
TUTOR는 명령형(imperative) 언어의 특성을 기반으로 하되, 일부 선언형(declarative) 요소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교사는 수업 순서, 화면에 표시할 내용, 정답, 보조 텍스트 등을 쉽게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1969년에 발행된 TUTOR 매뉴얼은 이 언어의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TUTOR는 복잡성을 줄이고 효율적인 교육 콘텐츠 제작을 가능하게 한 혁신적인 도구였으며, PLATO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교육의 미래를 열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PLATO III와 TUTOR의 탄생
PLATO III와 TUTOR의 개발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 교육의 본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교사들은 복잡한 프로그래밍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직접 수업 자료를 설계하고, 학생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기술이 실제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TUTOR 언어는 이러한 혁신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술적 제약을 고려하여 설계된 이 언어는 필드 기반 구조와 유닛 지향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닛은 마치 하나의 슬라이드처럼 작동하며, 특정 슬라이드를 호출하거나 위치를 지정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WHERE, PLOT, WRITE 명령을 사용해 텍스트와 그림의 위치를 정의하고, LINE 명령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HELP, NEXT, BACK 명령은 학습 흐름을 유닛 간에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TUTOR는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세심하게 설계했습니다. 화면의 특정 위치에서 입력을 받을 수 있는 “화살표(arrow)“를 정의하여, 정답(ANS),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단어(MUST), 중요하지 않은 단어(DIDDL), 포함될 수 없는 잘못된 단어(CANT)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부정확한 답변까지도 포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PLATO 시스템은 단순히 정답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학생 스스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SPELL 명령은 철자 오류를 감지하고 이를 교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학생당 최대 63개의 변수를 문자열, 정수, 부동소수점 형태로 저장할 수 있었으며, CALC 명령을 통해 계산 작업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능들은 나중에 널리 알려지게 된 PILOT 언어와 일부 유사한 점을 보였지만, TUTOR는 당시 학습 콘텐츠 제작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독창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자 모드(author mode)”
PLATO 터미널은 교사들에게 “편집 모드”라는 특별한 편집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Moodle 편집모드”와 유사한 개념으로, 교사가 수업 자료를 직접 작성하고 편집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저자 모드는 단일 전역 비밀번호로 보호되었으며, 매뉴얼에서는 교사들에게 “학생이나 권한 없는 사람이 저자 모드로 전환하는 방법을 보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할 정도로 보안이 강조되었습니다.
저자 모드를 활용하면 데이터를 디스크 팩이나 자기 테이프에 저장하거나 불러올 수 있었고, 학생들의 학습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거나 출력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사는 학생 계정으로 직접 로그인해 수업을 시연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능들은 PLATO 시스템이 단순한 학습 도구를 넘어 진정한 교육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교사는 더 이상 기술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 중심의 학습 환경을 창조하는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PLATO III와 TUTOR는 기술과 교육이 만나 빚어낸 혁신의 산물이었으며, 이후 교육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Mona Lisa TUTOR example in action. Credit: A Little History of e-Learning (preprint, Cope & Kalantzis, 2021)
PLATO III는 CDC 1604 컴퓨터에 최대 20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PLATO III 터미널 중 최초로 대학 외부에 설치된 것은 일리노이 주의 수도 스프링필드에 위치한 스프링필드 고등학교였습니다. 이 터미널은 전용 비디오 다운링크와 키보드 데이터 업링크를 통해 연결되었습니다.
이후 PLATO III는 대학뿐만 아니라 지역 간호 학교, 초등학교, 그리고 커뮤니티 칼리지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1970년까지 PLATO 시스템에는 720시간 이상의 코스웨어가 제공되었으며, 이를 통해 더 다양한 학습자에게 교육 자료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PLATO III terminal in 1969. Credit: X-4 Tutor Manual (Avner & Tenczar, 1969)
PLATO III가 단순히 교육용 시스템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2년 PDP-1에서 처음 등장한 고전적인 우주 전투 게임 Spacewar!는 큰 인기를 끌었고, 1969년에는 리처드 블롬(Richard Blomme)이 이를 PLATO 네트워크로 이식하였습니다. 그는 기존의 벡터 그래픽 대신 사용자 정의 문자 그래픽을 활용하여 우주선을 표현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대결을 벌일 수 있었으며, “빅 보드(Big Board)”라는 기능을 통해 상대를 선택하고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이 게임은 PLATO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여러 게임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PLATO의 네트워크는 단순히 학습의 장을 넘어,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상호작용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