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우 내성적이고, 개별적인 사람입니다.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리더십' 영역에서는 실패한 리더였습니다. 혼자 하는 일은 잘 해왔지만, 팀을 움직여 일하는 것에는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그런 제가 커뮤니티를 운영하려는 생각을 하다니, 저도 스스로 의아합니다.
내면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왜 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싶은가. 그 근본적인 이유는 '안타까움'입니다.
저는 2003년에 이러닝 업계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최초 이러닝 콘텐츠 교수설계자로 시작해서 지금은 잡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더 선배 경영자들을 1세대라고 칭한다면 저는 1.3세대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나름 업계 썩은 물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닝 업계에 들어와서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담당자의 역할로는 욕먹어 본 적이 별로 없는 소위 '일 잘하는 직원'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 성공 또는 수주했고, 그렇게 일하면서 영향력도 생겼습니다. 한 때에는 '이러닝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구글에서 '이러닝' 검색어로 맨 위에 나오는 블로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블로그 덕분에 '전문가'로 인식되어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은 조용히 숨어서 저 혼자 일하고 있습니다. 협업하는 몇몇하고만, 진짜 친한 몇분하고만 연락을 하면서 칩거(?)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특히 에듀테크(과거 이러닝) 업계 돌아가는 정보도 캐치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1년 동안 몇가지 저 나름의 중요한 시그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상황은 서로 달랐고, 만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저의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업계에 선배가 없구나..."
같은 직장 속에서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상사에게 고민을 내비치면 칭얼거림으로 치부되거나(제가 과거에 그렇게 행동하는 관리자였...), 무능한 사람으로 찍힐 수 있거나, 아니면 직장 내에 고민을 이야기할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의 동종업계 사람 몇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저의 꼰대력을 발휘해서 몇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것을 매우 의미 깊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꼰대'로 낙인찍었을텐데, 잘 모르는 저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왜 이런 상황일까를 고민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과거에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한참 담당자로 일할 때에도 업계는 본받을만한 선배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하면서 소위 독고다이로 헤쳐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겠죠.
그런데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중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업계 고인물을 넘어 썩은물들은 나름 자리를 차지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그 아래 중간은 없고 신입들만 있는 느낌입니다. '중간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조언과 경험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갑니다. 싫으나 좋으나 그렇게 살아가면서 배우는 거죠. 좋은 것도 배우고, 나쁜 것은 반면교사삼고. 그런데 그 흐름이 어느 순간 끊긴 느낌입니다. 고인물과 신입의 조합이 고착화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계속 된다면 제가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 업계에서 은퇴하고자 하는 에듀테크/이러닝 영역에 위기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계 교류의 장이 필요하겠는데..."
그래서 방법을 고민했고, 결론은 커뮤니티였습니다. 과거에도 커뮤니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네이버 카페도 있었고, 지금도 페북 커뮤니티도 있습니다. 그러나 활성화 정도는 형편없습니다. 사람들은 소속되어 있는데, 접속상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어떤 정보를 공유하는지 눈치게임을 하는 느낌입니다. 저조차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만나게할 수 있을까, 만나서 서로 고민을 나누고 그 속에서 생각이 활성화되도록 하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이것을 고민했습니다.
우선 온라인으로 에듀테크와 관련된 생각과 정보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다행스럽게 유비온에서 고정비 격인 서버를 대주겠다고 하시어 '돈 걱정'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솔루션을 사용할까 수개월간 검색과 테스트를 한 끝에 NodeBB라고 하는 생소한 포럼 솔루션을 찾아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을 시작했으니, 확장을 고민할 것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냥 한번 만나자'는 것은 오래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터디'를 주제로 만남을 가질 예정입니다. 사실 그냥 만나는 것을 저는 잘 못합니다. 인생 자체가 '목적지향적'으로 살아왔기에 주제가 있어야 그 주제를 가지고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주제를 스터디를 통한 '성장'으로 잡았습니다.
스터디를 빙자해서 모이고, 그렇게 모이다 보면 사람이 늘고, 그렇게 늘면 다른 선순환이 일어나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전용으로 이벤트를 한다거나, 매우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천히 공부하면서 다져가는 커뮤니티로 만들고 싶습니다.
꾸준하게 오프라인에서 스터디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스터디 주제입니다. 둘째는 여유시간입니다. 셋째는 모임운영에 갈아넣을 노동력입니다. 이렇게 3가지가 준비되면 스터디는 꾸준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스터디 주제를 잡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늘면 자연스럽게 스터디의 주제는 다각화될 것입니다. 그 전까지 마중물 역할을 제가 하면 됩니다.
시간도 필요합니다. 제 나이 이제 반백이 넘었습니다. 아들놈 뒷바라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몇년만 더 고생하면 저도 인생게임 'Phase 3'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도 조금 더 낼 수 있다 생각해서 지금부터 시동을 거는 것입니다.
혼자 움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몸이 가볍습니다. 저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벌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 이외 별다른 취미(게임 빼고)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갈아넣을 노동력도 있습니다. 소위 '돈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커뮤니티를 기업단위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안하고 있었겠죠. 그래서 제가 반백이후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갈아넣어 보려 합니다. 문제는 체력인데, 열심히 운동하면서 길러야죠.
왜 실패한 리더였던 제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제가, 조용히 독고다이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는 제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려고 했는지 적어보았습니다. 이렇게 긴 글을 생성AI 없이 적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과거에 블로그 운영하던 느낌으로 생각을 가감없이 적어보는 공간으로도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다시 적고 모이고 나누다 보면 에듀테크 업계의 주요 커뮤니티로 성장할 수 있겠죠. 그때가 되면 저는 잘 물려주고 은퇴라이프를 할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연결의 힘, 커넥트온에 연결해주세요. 굽신굽신.